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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때. 함경남도 흥남부두에서 피난민을 태운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탈출한, 실향민 ‘임길채’씨는 진해에서 서울로 가려다가 문제가 생겨 대전에서 내립니다.
생계가 막막했던 그에게, 대전 대흥동성당이 미국에서 공수해온 밀가루 2포대를 내줍니다.임씨는 가족들 끼니를 해결하고 남은 밀가루로 찐빵을 만들어, 대전역 앞에서 장사를 시작합니다. 나무 간판에는 ‘성스러운 마음’이라는 뜻의 ‘성심’을 새겨 넣었습니다. 대전의 명물 빵집 ‘성심당’의 시작입니다.
북한을 탈출할 때 ‘임길채’씨는,
“이번에 살아남으면 남은 인생 남에게 베풀며 살겠노라”고 다짐합니다.
그후 임씨는 자리가 잡혀가면서, 하루에 만든 빵 중 100개는 이웃에게 나눠줬습니다.
당일 만든 빵 중에서 안팔린 빵은 모두 가난한 이웃에게 나눠주는 성심당의 전통은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지난해(2024년) 성심당이 지역사회에 베푼 나눔빵은 10억원 어치가 넘습니다.
직원들은 매일 각지에 보낼 나눔빵을 포장, ‘사랑’을 전달합니다.
가업을 이어받은 아들 임대표가 1981년, 소보로,앙금빵,도넛을 합친듯한 ‘튀김 소보로’를 개발, 크게 힛트를 칩니다.
2005년 화재로, 매장과 빵공장이 모두 소실되는 위기가 찾아와,
임사장은 장사를 접으려 했습니다. 그러자 직원들이 ‘잿더미 회사, 우리가 지켜 세우자’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재건에 나섭니다.
성심당은 직원 인사고가에 ‘사랑’항목을 만들어 배점 40점을 주고,
회사직원에겐 재입사 권리를 주며 화답합니다.
2012년. 부친의 창입지였던 대전역에서 본점을 낸 것이 전국구 빵집 도약을 이끕니다.
대전시민들은 물론, 대전을 방문하는 외지인들까지 성심당 빵을 줄지어 사가면서, ‘전국 2대 빵집’ 반열에 오릅니다.
하루 내방객이 1만 7천명이 넘는 성심당은 1년에 한번,
직원체육대회날만 문을 닫습니다. 그날이 오면,
“재난 문자로 휴업 알려주세요.”
“KTX가 대전역 무정차 통과하게 해주세요.”
등의 광팬들의 요청이 소셜미디어를 달굽니다.
성심당의 지난해 매출은
1,243억원. 동네 빵집 최초로 1,000억원을 넘깁니다.
영업이익은 무려 315억원.
빠리바게트(199억원), 뚜레쥬르(214억원)등 대기업 빵집을 앞지릅니다.
작년(2024년)에 새롭게 선보인 딸기시루가 가성비케이크로 입소문을 타, 매출을 크게 올렸습니다.
성심당 임대표 책상 위 명패에는 다음 글귀가 써있습니다.
“모든이가,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하도록 하십시오.”
동네가게가 대기업과 경쟁해서 향토기업이 되고,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잡는 ‘성심당 모델’이 계속 나오기를 바랍니다.
성심당의 성공비결이 무엇일까요?
‘베푸는 삶’ 이 바로 그 비결입니다.